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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장편영화

[영화 리뷰] COVID-19 울타리 속 자유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겼던 일과들과 통용되었던 방식들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어려워졌다. 일상뿐만 아니라 영화산업에서도 판데믹의 영향으로 극장 개봉은 미뤄져 영화의 달력은 무너지고 빈 좌석이 더 많은 극장에 앉아 바라보는 앤딩 크레딧에서는 COVID-19 Coordinator라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이러한 문제 속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에게 주었던 지키고 싶은 일상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상기시켜준다.

영화<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가 진행되는 방식은 독특하다. 영화를 유심히 보았다면 장면 사이 카운트다운되는 날짜 또는 제목에서부터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영화의 후반부 4일째 썩은 모과가 싱그럽게 변한 것을 보고 인지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 이창동의 <박하사탕>이 떠오르는데 영화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시간을 역순으로 배치한 것이 아닌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뒤에서부터 읽어 보는 감각을 안겨주기 위한 듯 각각의 하루는 그저 일상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사과나무 아래 로맨틱한 분위기의 장면 (출처 : 네이버 영화)

공동 감독인 미겔 고미쉬의 전작 <우리들의 사랑스런 8월>에서는 축제를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여줬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판데믹 기간 봉쇄체제속 머무는 사람들을 그린다. 한정된 공간 속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재하고 있는 조건은 짜여진 것이 아닌 캐릭터 주위의 요소를 촬영하며 관찰한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길어진 여름의 낮보다 더 느린 리듬으로 인물을 포착하고 모기로 밤을 설치는 불쾌함까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판데믹 시대를 배경으로 활용한 이 영화는 영리하다. 마치 자유롭게 포착할것을 강조하지만 그 자유는 이미 판데믹이라는 울타리 속에 카메라와 함께 갇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나름의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관객과 공감을 형성하려 노력한다.

나비를 바라보는 3인방 (출처 : 네이버 영화)

3인방의 나비 집짓기라는 이야기일까라는 질문이 들 때쯤 마스크를 쓴 남자가 불쑥 나타나 촬영 소품을 배달한다. 그 이후에도 아침을 먹는 두 배우들 뒤로 분주히 자신의 시리얼을 챙기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생선 스튜를 만들기 위해 감자를 깎는 가사도우미도 등장한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메이킹 필름과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의 입장도 조금 달라진다. 관람객과 방문객 그 사이 영화와의 거리가 반 발자국 가까워진다. 판데믹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지금 상황과 달리 오히려 감독은 영화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화려한 조명 속 키스신(출처 : 네이버 영화)

첫째 날 전신보호복을 입은 사람이 포르투갈 영화위원회의 촬영 방침을 읽어 내려간다. 위험 수준에 따라 색상으로 구분되고 음식 조리 지역은 초록, 욕실 세면대 노랑, 화장실은 빨강 등 일상에 경계가 나뉘고 마스크를 낀 촬영 관계자들은 거리를 둔 채 둘러앉아 경청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들은 봉쇄된 촬영지에서 초록, 노랑, 빨강 색색의 조명 아래 춤을 추고 그 화려한 경계 속에서 자유를 비춘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배우, 감독, 제작진 심지어 그들이 키우는 강아지까지 확장하며 이 시대를 함께 버텨내고 있는 관객의 연약한 맨살을 쓰다듬어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