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부산국제영화제-영화리뷰] 기차와 나란히 달리는 그들의 삶 <배달의 기사>GV
2022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아시아의 중견감독들과 신인감독들의 다양한 시각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신작 및 화제작을 소개하는 섹션)에서 인도 배우이자 감독인 난디타 다스의 새로운 장편 <배달의 기사> 가 선정되었다.
카스트 제도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3년 전 내가 지냈던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은연중 남아 있었다. 식사 중 친구가 남편 소개를 해줄 때 카스트 제도 중 높은 계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삼각형을 그리며 꼭대기를 강조하던 바디랭귀지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명하다. 현재 2022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배달의 기사>에서는 또 다른 인도의 계급차를 보여준다.
1등석부터 꼬리칸까지 마치 <설국열차>를 연상케 하는 기차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취업 신청서를 받기 위해 뒤엉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면에서 주인공인 마나스는 현실인 배달부로 돌아온다. 배달부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주유소에서 일자리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인다. COVID-19의 영향으로 실업률이 최고를 달하는 인도의 모습, 하지만 배달부라는 직업을 통해 만나는 고객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넓은 정원에서 드론을 날리며 노는 아이들, 고가의 술이 널려있는 대리석 바닥의 집 나마스가 열심히 배달을 하지만 수입의 40%는 기름값으로 나가는 것이 현실, 무례한 손님들을 만나게 되어 마나스의 배달 평점이 깎이고 억울한 일로 직장마저 잃게 된다.
치매 걸린 어머니와 두 자식을 먹여 살리기에는 벅찬 마나스 억울하게 받은 평점을 되돌리기 위해 본사로 찾아 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형식적인 대답뿐 그가 벗어던진 유니폼을 주워가려는 취업이 고픈 사람들은 이미 정문 밖까지 줄을 서있다. 아내인 프라티마는 남편이 해고된 것을 알게 되고 백화점에 야간 청소부로 근무하게 된다. 마나스는 프라티마를 찾아와 버스 대신 배달하던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비록 직장은 잃었지만 선로 옆 기차와 나란히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왼쪽부터 -프라티마 역 - 샤하나 고스와미, 감독 - 난디타 다스, 마나스 역 - 카필샤르마
GV 요약
난디타 다스
아주 특별한 상영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세편 모두 부산에서 상영되는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굉장히 인도의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질문
주인공 부부에게 이 기차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난디타 다스
아무리 인생이 어렵고 각박하다고 하더라고 누구나 작은 즐거움의 순간들을 꿈꾸면서 살아나가고 있기에
이 영화가 끝나도 인생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겠지만
엔딩 크레딧을 보시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생이 마치 둥글 서클을 보여주며 마무리가 되는데요.
어쩌면 내일의 인생은 오늘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지만 마치 우리가 기차의 모습처럼
쉼 없이 달려갈 수밖에 없는 언제가 늦을까 걱정하면서 늦지않게 서두르는
그러한 인생의 모습들을 기차의 모습을 통해 형상화해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도 계속 쉼없이 배달을 하며 달려가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런 인생 안에서도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믿으며 작은 즐거움의 순간들을 꿈꾸며 기차의 리듬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질문
프라티마가 일하면서 이마에 붙이는 빈디를 떼고 다시 다른 곳에 숨기는 장면 그리고 남편이 아내가 일하는 곳에 찾아가 함께 나오는 장면을 통해 여성이 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을 의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난디타 다스
그들의 사이의 관계 변화의 선을 좀 따라갈 필요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집안은 돌봐야지 나가서 일한다고 불평을 하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일부로서 고집을 계속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편이 혼자서 버느라 애쓰는 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차츰 알게 되기에
일하는 것을 인정하느냐 아니냐는 단순히 흑백으로 가릴 순 없고 물론 그 안에 지지하는 마음도 있고 나보다는 아내가 더 많이 벌게 된다면 하는 질투도 약간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일하는 장소에 데리러 가고 하는 모습은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고는 못하지만 남편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행동으로 일종의 감사 표현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런 관계 속의 흐름을 따라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빈디 같은 경우는 인도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붙이는 일종의 표시지만 지금은 의무가 아닙니다.
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바지도 입고 평소에 입지 않던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자신의 빈디가 그 의상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떼게 되고 남편과 있을 때는 본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시 붙이는 겁니다.
이 영화는 비록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세밀한 뉘앙스들을 반영하게 되는데요.
역시 영화를 통해 여러분들을 또 다른 세상으로 초대하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2022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게 된다면 <배달의 기사>를 통해 인도의 문화 그리고 사회를 마냥 무겁지 않게 볼 수 있는 기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